이 글은 도서출판 담론에서 제작하는 ‘교원총서(가)’의 일부입니다. 교원총서(가)는 선생님들의 교육담론을 담고 있으며 최소 100권의 시리즈로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 문의 : oessol@naver.com

안진영 소개

제주교대 졸업 / 춘천교대 교육대학원 아동문학과 졸업 / 어린이도서연구회 
저서 : 동시집, <<맨날맨날 착하기는 힘들어>> (문학동네) 


안진영(이하 안) : 


보통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착한일기를 쓰고 시간표 일기를 써요. 시간표 일기는 하루에 했던 일을 쭉 적는거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밥먹고 학교와서 1교시 뭐하고, 2교시 뭐하고, 학교 끝나고, 방과후 끝나고, 학원 갔다가 집에 와서 잠잤다... 

그래서 3월엔 일기 쓰는 법을 하나씩 알려주요. 
 
"이건 일기가 아니야. 시간표지. 하루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쭉 이어지는 줄이라면 그 중에서 점 하나를 딱 찍어, 그것만 자세하게 써야하는거야."

이렇게 얘기하면 다음 날 세 네명의 아이들의 일기가 바뀌어요. 그러면 그 아이 일기를 읽어주고 묻죠.

"내가 왜 이 일기를 읽어줄까?"

 “시간표 일기가 아니라서요."

"그래. 시간표 일기에서 벗어났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일기야"
 
이렇게 하면 그 다음 날 몇 명이 또 바뀌어요. 그 다음 날 또 몇 명이 바뀌고... 저는 아이들의 일기에 답글을 다 달아줘요. 그리고 읽어줄 일기는 복사를 해놔요.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아이들은 자기 일기가 뽑혔는지 아닌지에 계속 관심을 갖더라구요.  


김외솔(이하 김) :

그게 하루 이슈가 되는거네요. 

안 :
 
네. 아이들이 제 주위를 계속 서성거려요. 서성거리면서 계속 뒤적거리면서 자기 것이 있나없나 살펴보죠. :)

이런 식으로 반의 모든 아이들이 ‘시간표 일기'에서 벗어나면 이젠 '나만의 표현'을 쓰라고 해요. 이렇게만 말하면 아이들은 '나만의 표현'이 어떤 건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작년 선배들의 일기나 잡지에 실린 아이들의 일기를 읽어줘요. 그럼 애들이 그걸 들으며서 까륵 까륵 웃어요. 

"왜 웃어? 재밌지? 왜 재미있을까? 그 이유는 이 선배가 자기만의 표현을 썼기 때문이야.  이 표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이 사람 뿐이야. 선배들이 이미 썼기 때문에 너희들은 앞으로 이 표현을 쓸 수 없어. 왜? 이건 이 선배꺼니까. 

너희들은 너희들 스스로 두뇌를, 상상력을 작동시켜서 자기 표현을 찾아와야해."

그러면 그 다음 날 몇 아이가 자기 표현을 찾아와요. 그러면 전 그걸 읽어주며 박수를 쳐줘요. 잘 했다고. 그 다음날 또 몇 아이가 자기 표현을 찾아와요. 그 다음 날 또 몇 아이가 해오고...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꿋꿋하게 자기 식대로 쓰는 아이가 있어요. 하지만 그런 아이도 결국 바뀌게 되요. 그 아이가 변화했을 땐 정말로 큰 박수를 받아요. 왜냐하면 기다리는 목마름이 오래 걸렸잖아요.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오늘은 선생님이 진짜 기쁜 날이야~ 내가 정말 오래 기다렸거든. 목이 다 빠지는 줄 알았어. 목이 너무 말랐어. 꿋꿋하게 원래 자기가 써오던대로 써오던 친구가 있었어. 누굴까?"

애들이 막 찾으면 제가 ‘누구~ 누구가 오늘 자기만의 표현을 썼어.’ 그리고 그 아이의 일기를 읽어주면 애들이 스스로 와~ 하며 박수를 쳐주죠. 


김 :

그 아이는 좀 뻘쭘하겠네요. 

안 :

그렇게 하나하나 잡아가요. 그래서 지금은 우리반의 지적장애아까지 다 써요. 그 아이가 다른 아이처럼 자기만의 표현을 쓰는 건 아니지만요. 장애아는 감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하는 걸 반복하거든요. 그 아이는 자기 느낌을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아이였어요. 하지만 저는 쓰라고 했죠.

"뭐든지 좋아. 뭐든지 써"

우리 반 뒤에 ‘감정단어’가 붙어있어요. 아이가 한글은 읽기때문에 ‘감정단어’ 보고 골라서 써보라고 해죠. 그랬더니 그걸보고 ‘신나는’이라고 써왔어요.

"‘신나는’은 아직 말이 안됐으니까 뭐뭐했다로 바꿔야해. 뭐라고 할래?"

“신났다?"

“그래. 신났다라고 쓰면 돼."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일기에 감정단어가 달라진거에요. ‘신기했다'가 나왔어요. ‘좋았다', ‘싫었다', ‘재미있었다' 하다가 ‘신기했다'는 새로운 낱말이잖아요?

"우리 친구 일기가 달라졌는데 뭐가 달라졌을까?"

“신기했다."

“그래 맞아. 선생님도 신기해. 새로운 단어를 썼다는 게 너무 신기해."
 
우리 반엔 친구들에게 감동을 줄 때 그 내용을 써서 붙여놓는 ‘감동나무’라는 게 있어요. 감동적인 사연이 있으면 감동나무에 그 사연이 올라가는데 그걸 전담하는 아이가 따로 있어요. :)

그 아이 주위에는 항상 포스트잇이 있어서 감동한 순간이 오면 써서 붙이죠. 아이 일기를 읽어주니까 반 애들이,
 
“선생님, 이거 감동나무에 올려요~ 이거 감동적인 일이잖아요."

그래서 그 날 감동나무에는 ‘ㅇㅇ가 새로운 감정단어를 써서 친구들이 다 기뻐했다’가 올라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