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도서출판 담론에서 제작하는 ‘교원총서(가)’의 일부입니다. 교원총서(가)는 선생님들의 교육담론을 담고 있으며 최소 100권의 시리즈로 만들어질 예정입니다.

* 문의 : oessol@naver.com

안영숙 소개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성장했다. 제주교육대학교를 나온 후 제주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학을 전공했고 1급 전문상담교사, 수석교사를 역임했다. 현재는 퇴임 후의 삶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언제든지 교사 상담이 필요하면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다.


안영숙(이하 안) :


제 경우는 숙제를 낼 때도 자기에게 맞게 해오라고 해요. 주제만 딱 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해오라고. 이건 1학년은 안되고 고학년은 가능해요. 1학년의 경우는  읽어만 와야하는 애가 있고 써와야할 아이가 있고 들어야만 하는 아이가 있어요. 그래서 3단계로 숙제를 내주죠.

고학년은 ‘네 수준에 맞게 해와' 하면 처음엔 천차만별이에요. 아이들이 자기 수준에 맞게 하는게 어떤 건지 모르는 것도 있고, 놀고 싶기도 하고 습관도 아직 안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한 두줄 해오는 애도 있고 정말 FM인 아이들도 있어요. 정성껏 해오는 아이는 몇 안되죠. 처음  몇 번은 모르는 척 하면서 아이들을 파악하죠.

'요 녀석은 요런 성향이 있구나.'
 
이렇게 다 파악한 다음에 그 다음 주 부터는 1:1로 들어가는거죠.

"누구야, 너의 능력은 이 정도밖에 안돼?"

김외솔(이하 김) :

아... :D


안 :

이렇게 딱 건드려주면 되는거야. 😃

"선생님이 보기에 너는 이거보다 수준이 높은 거 같은데... 숙제 해온 거 보니까 요거구나?"

김 :
 
뻔한 표현이라도... 


안 :

그렇죠. 말 한마디에요. ‘너 왜 이렇게 해와!’가 아니죠.
 
"음~ 너 숙제한 거 보니까 수준이 이 정도니까 선생님도 이 수준으로만 너를 대해야겠구나~ 깊은 질문은 하면 안되겠네?"

"아닌데요..."


김 :
 
그런 거에 아이들이 자극을 받나요?

안 :

받아요. 

협동학습 하는데 제대로 안 하고 묻어가는 아이들이 너무 많잖아요? 나는 그런 거 정말 경계하는데 이렇게 하다보면 하나하나의 아이들이 정말 힘을 기르게 돼요. 앎의 힘? 그래서 정말 자기 최선을 다해서 해요.

정말 못하는 애가 한 줄 해오면 어때요.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한거라면 난 인정해줘요. 또 써올 게 없으면 기억만 하고와도 된다고 해요. 
 
숙제발표하는 시간에 처음에는 애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 줄 모르고 자기가 써온 것을 읽으려고 해요. 그럼 이렇게 말하죠.

“공책 덮어. 선생님은 읽으라고 하지 않았어. 발표를 해봐. 네가 어제 이거 썼던 것 중에서 기억나는 거 아무거나 다 말해봐. 한 문단이라도 좋아."
 
텔레비전 보면서 써온 놈, 뭐하면서 써온 놈... 이런 아이들은 기억나는 게 없죠. 그러면 한 번 더 읽어보라고 해요. 그리곤 다시,

"덮어. 자 이제 얘기해봐."
 
그러면 뭐 하나쯤 얘기해요.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하면 다음부턴 요약을 해오죠. 처음에는 정~~~말 요만큼. 그래도 괜찮아요. 단어 하나를 말하면 내가 그 단어에서 파생되는 질문을 내가 해주거든요. 

"좋아. 그래서 어떻게 됐지? 어, 그래 맞아. 그 다음?"

이렇게 하면 척척척척 되요.  많은 선생님들이 숙제해 온 것을 읽게 두는데 그거 안돼요.


김 :

진도체크라고 해야하나요? 그 많은 아이들의 진도를 다 기억하시는건가요? 

안 :

거의 기억이 되요. 왜냐하면 아침부터 집에 갈 때까지 하루종일 붙어있으니까요. 중학교 같으면 잠시잠시 보겠지만 우리는 하루종일 있으니까 쟤가 지금 뭔 생각하는지도 보여요.

예를 들면 발표 안 하는 아이들. 사실 나도 어릴 때 발표를 잘 하지않았어요. 나는 글자 알기 시작하면서 책을 엄청나게 읽어서 아는 건 많은데도 부끄러움을 너무 많이 탔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뭐 물어보면 가만히 앉아있고. 쉬는 시간에도 동화책이나 읽고있고. 그러니까 선생님이 제발 나가 놀라고 하더라구요.

집에서도 그랬어요. 부모님이 밖에 나가서 놀다오라고. 워낙 안 나가니까. 이런 아이보고 발표를 시키면 어떻게 해... 그런데 많은 선생님들은 '쟤는 시켜도 안 하는 아이니까’라고 생각하고 그냥 패스, 패스, 패스. 맨날 손 드는 애들만 발표하고.

그래서 내가 그걸 후배들에게 말해줬지요.

“아이의 눈을 봐라. 알고 있는 눈과 모르고 있는 눈은 다르다."

이게 정말~~ 얼마나 중요한거냐면...! 아이들 눈을 맨~날 봐야해. 그러면 알고는 있지만 부끄러운 거 하고 아예 모르는 거 하고는 금방 알아요 금방. 다 알고 있어도 부끄러워서 발표 못하는 건 달라요.


김 :

맞아요.

안 :

부끄러워서 발표를 못 하는 아이들에겐 그냥 써내라고 하면 완벽하게 써서 내요. 이런 아이도 발표하게 하는 힘은 그냥 시키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 선생님들은 그냥 '해봐~ 해봐~’ 했다고. 나는 발표하려고 일어나면 막~~ 가슴도 뛰고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난 나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좋은 경험이 된거 같아요. 그래서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에 불러서 이렇게 말해요.

"누구야~ 아까 보니까 너는 분명히 알고 있는 것 같던데~ 선생님이 네 눈을 보니까 넌 분명히 알고 있는데 부끄러워서 말 못 하겠어? 사실 선생님도 초등학생 때 부끄러워서 한~번도 발표해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제는 말을 잘 하잖아~"

‘선생님도 처음엔 너무 쿵쾅거리고 떨려서 말을 못했어.’ 그러면 애가 약간 마음이 움직여요.

"다음 시간에 해볼래? 아니면 내일? 네가 확실하게 아는거 선생님이 한 번 발표를 시켜볼까?"

그러면 아직은 아니다 뭐 그런 걸 얘기를 해요.

"그럼 네가 알고 있으면 선생님이랑 눈 마주칠 때 한 번 웃어. 선생님도 웃을께."
 
그리고 어느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그럼 발표 한 번 해볼까?’하고 발표를 시켜요. 

"얘들아 오늘은 누가 발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들어볼래?"
 
애들이 신기하잖아. 이제까지 안 했던 애가 발표를 하니까. 아이가 발표를 하면 이렇게 해줘요.

"정말 잘하지? 몰랐지? 이렇게 잘 하는거~"

그런데 무작정

"너 왜 발표 안 해?"
 
이러니까...
 
부모들이 또 공개수업 갔다오면 '우리 애는 한 번도 발표를 안하고...’ 그럼 내가 엄마에게 얘기해여.

"알고 있는가가 중요한 거지 발표를 못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떤 아이는 잘 몰라도 막 나서려고 하는데, 이 아이는 약간 완벽주의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틀릴까봐 걱정하는거에요. 그러니까 집에서도 애가 좀 실수하고 잘못해도 괜찮다, 괜찮다, 해주다보면 애가 자신감을 얻게 될거에요."

이렇게 선생님이 몇 번만 하다보면 반 아이들이 ‘제는 알고서도 발표를 못한거구나~’를 알아요. 그러면서 모둠 활동할 때 변화가 생기죠.